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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烏(금오)

          계사년 한 해가 가고 있다. 어디로? 우리는 왜 해가 가고 오고, 뜨고 진다고 하는가, 정작 하늘에 떠 있는 그 해는 뜨고 진적도, 가고 온 적도 없는데 말이다. 정작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저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님은 아마 유치원생도 다 아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해가 뜨고 지고, 가고 온다고 한다.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한다는 것보다 정서상 더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사실은 아니다.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다. 세상에는 이런 경우가 많다. 사실이 아닌데도 짐짓, 사실인양 쓰고 사는 것 말이다. 해가  ‘동산’에서 뜬다, ‘별’이 반짝인다, 같은 것 말이다. 편의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것을 정해놓고 그것을 옳다, 라고 부르며 해야 한다, 라고 강요받고  강요하면서 살고 있다. 가령, 시간이라는 것을 정해 놓고 24시간이 흘러가면 하루가 갔다, 라고 하고, 해가 뜨고 지기를 365일 하면 일 년이 갔다, 라고 하는 것. 사실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왜 진실이 아니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면, 당신은 너무 이 세상의 규칙과 규범에 착하게? 따르고 사는 게 아닌지.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개미가 30센티 자 위를 기어간다고 하자. 하루 일 센티를 옮겨간다면 30일 만에 30 센티 끝에 도달할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마찬가지로 일 년이란 게 갔다고 치자. 그러면 그 일 년이라는 것이 옮겨 간 곳이 있어야 하는데, 그 30센티 같은 한계적인 시간 같은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일 년이 갔다, 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허공을 피자처럼 자르겠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시공간이라는 것을 임의로 잘라서, 이걸 2013년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 숫자적으로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해는 가지 않는다. 그런데 갔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세상의 모든 이름과 지명과 분별과 한계적인 것, 즉, 나와 너라는 것, 내 것, 네 것, 우리, 남 ,원수, 적, 이 모든것도 다 마찬가지다. 이것은 내가 지은 분별일 뿐, 세상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해서, 내가 분별로 세상을 가르면 가른 만큼, 그 세상 속에 갇히게 된다. 촘촘한 그물을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갇히는 신세인 것이다. ‘그럼 남들이 다 그렇다는 것을 나는 아니라고 하라는 것이냐’가 아니다. 이런 얘길 하면 꼭 이렇게 따지는 이들이 있다. 설마 그런 얘길 이렇게 길게 하겠는가. 요는, 세상이 이리저리 갈라놓은 것은 필요에 의한 편의일 뿐, 해뜨고 진다는 말처럼 진리가 아니다. 그런 일에 나를 가두지 말고 뛰어넘어 자유롭게 살자, 는 것이다, 사는 세상을 뛰쳐나오라는 것이 아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옭아매고 있다, 여겨지는 세상은 결국, ‘누군가’의 세상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것임을 알자,는 것이다. 해가 뜨고 지기 때문에 한해가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2013년 이라는 한계를 정해놨기 때문에 한해가 간 것이다. 만약 그 구분을 짓지 않으면 해는 가도오도 않는다. 이것 하나만 떠나도 큰 자유를 얻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 라는 것, 너라는 것에, 삶과 죽음, 시작과 끝 같은 것에 분별을 짓는다면, 그 그물에 스스로 걸릴 수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주객의 전도인 것이다. 成住壞空성주괴공, 生住異滅생주이멸 인 것이다. 우리도 변하고 사라진다. 흐르는 물을 묶어 가두려는 일처럼, 나를 가둘수록 삶이 답답해짐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집착을 끊고, 흐르게 두라, 이것이야 말로 불교 수행의 기본자세이다. 集집을 떠나면 滅멸에 이르는 인과법 말이다. 매사가 다 변함, 즉, 무상 이라는 것을 알아, 내가 정한 테두리를 끊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불자들이 오늘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음 한다. 이렇게 구구 절절 해도, 뭐든 ‘새해부터 하겠다’는 이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데 한 표. “金烏出沒促年光, 速成佛果濟迷倫, 금오출몰촉년광, 속성불과제미륜, 今生若不從斯語, 後生當然恨萬端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금까마귀 들락날락 세월을 재촉하니, 속히 불과를 이루어 미혹한 중생을 제도하라. 금생에 이 한말 듣지 않으면, 후세에 반드시 한탄이 크리라” -自警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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