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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있습니까

          신분이 좀 남과 다르다 보니, 늘 타인의 시선에 익숙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시선이 모아지는 자리에 가게 되면, 온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하긴, 빡빡 깎은 머리에 낯선 두루마기 차림으로 공공장소에 나타나니, 한번 보긴 봐야겠지만, 일제히 모아진 시선에, 이건 무비스타처럼 손을 흔들 수도 없고…그런데, 최근 일이년 사이에 큰 변화가 생겼다. 전세가 역전? 된 것이다. 얼마 전 모처럼 공항에 갔었다. 공항 대합실은 기다리는 일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늘, 이 중이 들어서면, 무료했던 대중의 시선이 쏠리곤 했었다. 그랬었지만, 이번엔 아무도, 정말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다. 이 중이 옷고름을 휘날리며 댄스를 한다 해도,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 것 같은 풍경. 너무 홀가분했다, 면 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한편, 두려웠다. 단 한사람도 예외 없이! 스마트폰에 얼굴을 숙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수많은 콩나물 인간을 마주친 기분이랄까, 낯선 외계에 떨어진 듯, 생경하고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대합실 특유의 그 성가신 웅성거림도 없는 적막함. 아무튼 이 중은 관찰자였고, 자유로웠지만, 불편했다. 대중에겐 어쩜 이런 풍경이 익숙할 테지만, 오랜만에 세상에 나온 처지이기에 그 변화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바로 옆에 앉은 친지, 애인 말고, 그 무엇과 소통하고 있을까. 그들은 옆사람의 눈동자 빛깔은 알고 있을까. 대합실에 개가 있었다는 것을, 벽에 그림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떠올릴 수 있을까. 누가 죽어가고 있었다면, 알 수는 있었을까. 그들이 여행 내내 본 것은 기계의 화면뿐이다. 그들은 여행을 한 것일까. 묻는다.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가 낙관론자들은 말한다. 예전에 티브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를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금의 이 아이티 세상도 별 걱정 없다고. 과연 그런가? 믿고 싶다. 그러나 비행 내내 이 중은 마음이 불편했다. 아다시피 사람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한번 움직을 때마다 업이 한번 구르고, 그 업의 축적이 바로 ‘나’다. 즉, 보고 듣고 맛보고 말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이 모여, 업식이 이루어지고, 그 업식이 바로 그 사람을 만든다. 컴퓨터 같은 가상의 세상에서는 수없이 안眼과 이耳가 움직일때, 비설신의鼻舌身意는 그대로 머물러 있다. 즉, 눈과 귀가 움직일 때, 코와 입과 몸과 뜻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많은 음식을 보고 듣지만, 냄새도 맛도 감촉도 느낌도 없다. 이러한 업의 축적은 몸의 불균형을 이루고, 불균형으로 쌓이는 업식이 균형 잡힌 사람을 만들어갈 순 없다. 이것이 과학적이든 아니든, 당연하지 않은가. 팔을 열심히 움직였는데 다리가 튼튼해질리는 없지 않은가. 가상의 세상에서 보낸 시간에 비례해서 가상과 현실의 간극은 점점 멀어진다. 한번 어긋난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데, 그 간극은 그대로 무시되어도 되는지. 인연법상 절대로 그럴 수 없음을 아는 처지에서는 아무래도 편안할 수가 없다. 그럼 어찌할 것인가. 답은 없다. 아니, 있다 해도, 답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 중은 혁명가도 아니고, 설사 혁명가일지라도 이 거대한 물결을 바꿀 힘이 없다. 없으면서 함부로 떠들어댈 수는 없다. 그래서 역으로, 당신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가. 지금 당신 곁에, 당신의 눈을 바라봐주고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대화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시간이 스마트폰과 잇는 것보다 편하고 행복한가. 휴대폰이 안 되면 불안하고 고독하고 떨리진 않는가. 한밤 모든 기기를 멈추고 나면, 무얼 해야 할지, 갑자기 공허해지진 않는가. 지금은 가을이다. 단풍은 지기 직전의 그 마지막 불꽃을 아름답게 태우고 있는 것을, 알고는 있는가. 안다 해도 혹시, 스마트폰이 알려준 건 아닌가. 그것이 리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는가. 당신은 ‘여기’를 사는 ‘진짜’ 사람인가? 여기 있기는 있는가… 사람이 그립다. -젊은 수좌가 조주선사께 물었다.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가르침을 주십시오,’ 스님이 말씀하셨다. ‘나 지금 소변보려 가야 하거든. 이런 일 같지 않은 것도 몸소 해야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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