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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물을 수 없는

          가을이 깊어지면 영화사 도량은 빛으로 가득 찬다. 야생 단풍나무, 뽕나무를 위시해서, 거의 모든 나무가 노랗게 물들기 때문이다. 한낮이면 얼마나 환한지, 눈부시다. 신도들이 단풍나무는 원래 빨간색 아니냐며, 은행나무 같은 노란 단풍나무를 바라보며 묻는다. ‘단풍에게 물어봐요’ 이런 종류의 물음에 대한 이 중의 대답은 늘 이렇다. ‘원래’ ‘빨간’ 단풍 나무도 없거니와, 오늘 첨 본 것도 아닐 터, 죽도록 알고 싶었다면 벌써 알았을 것이다. 알아도 몰라도 인생에 그닥 중요치 않다여겨, 그냥 살았을 테니, 굳이 알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고래로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왜 떨어지는지, 치열하게 스스로 그 답을 찾는 이가 있는가 하면, 궁금하면 무조건 묻는 이, 남이 해놓은 답만 답습하는 이, 아예 사과가 떨어졌는가 어쨌는가 관심도 없는 이, 세상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태도는 대략 이래 왔다. 우리가 바깥 경계에 대해 물음이 생기는 건 알고 싶어서다. 알려는 건 이해하고 싶어서고, 이해가 됐다 여기면 편하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많이, 편케 버는지 그게 제일 궁금한 거 같다. 각 분야의 경제 전문가, 재테크 전문가의 부자 되는 지침서에 나아가 돈 일찍 벌어 성공한 일반인의 훈계까지, 돈에 대한 얘기가 늘 주변에 넘친다. 답이 그리 많으니 모두가 돈을 다 쉽게 버셨는지? 그보다 해답을 얻어, 편안해지셨는지? 글쎄다. 세상 여러 분야의 궁금증 해결을 위해 우리는 학교를 다니고 책을 보고 컴퓨터를 익히고 티브이를 보고 키워드를 치고…유레카! 알았다고 여기며 남이 정한 답을 찾아 답습한다. 그리하여 세상에 대해 모르는 거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어쩐지 삶은 편편칠 않다. 처처에서 불편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알면 편안해지는데 뭔가 모르고 있는 게 확실하다. 무얼 모르는 걸까? 무얼 모르는지, 그걸 모른다. 모른다는 걸 몰라 묻지도 못한다. 삶이 불편하다면 무얼 물어서 해결해야 하는지 말이다. 삶에 대한 의문이니까, 당연히 먼저 삶을 물어야 하고 왜 사나 물어야 하고 왜 살게 됐나 물어야 하고 언제부터 살고자 했는지, 내 의지인지 타의인지… 묻고 물어야 하는데, 궁금하진 않다. 그 해답을 모른다면 삶은 불편해 짐이 당연하다. 세상엔 이 문제를 해결 본 이들이 있다. 깨친 이들이다. 그들은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편안하다. 혹여 간절하여 묻는다면, 당신의 삶을 누구한테 물어야 하겠는가. 물을 수 없다. 아무도 당신을 모른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찌 남이 나를 알겠는가. 내가 나를 사과로 알고 있는데 남이 너는 배라고 한들 알아지겠나. 아님 배로 행동하면서 사과로 답해주길 바란다면 알아지겠나. 해서, 먼저 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그것은 물을 수 없는 물음. 자신 이외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다. 부처님만큼, 그보다 더 치열해야 얻을 수 있는 물음이다. 그게 어려우므로, 대다수가 모르므로, 뭐 굳이 알지 않아도 살아지니, 조금 불편한 채 그냥 살아도 된다. 모두가 이렇게 여겨 찾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수많은 성현들은 그 답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 찾아서, 너와 나의 삶을 보다 자유롭게 운영하는, 그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보다 더 밝히자고. 그 밝음을 나누자고. 그러므로 삶이 정말 궁금한 사람은 늘 자신에게 묻고 묻는다.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물음을! 애벌레는 나비의 세상을 모른다. 또한, 고통스런 탈피를 거치지 않고는, 나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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