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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moon)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은 기우나니라, 얼씨구…’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달달 무슨 달 쟁반 같이 둥근다…’ 달이 뭐 어쨌다고, ‘달 타령’은 왜 이리 많은가. 왜 우리 옛 처자들은 구월이, 삼월이, 유월이, 월선이, 명월이, 다 달 이름인가. 달이 뭐 어쨌다고. 왜 칠,팔 월 대보름, 정월 대보름, 보름달 뜨는 날을 큰 명절로 삼았는가. 도대체 달이 뭐라고. 그 세상이 어디든,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 되는 것에는 그럴만한 중요한 까닭이 있다. 토끼 방아 찧던 그 자리에 인공 위성이 대신 차지한 이후로, 달에 대한 시심詩心도, 달에 대한 신비도, 달 타령도 많이 사라졌지만, 달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궁금하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이름으로 주어야 했고, 정한수 떠놓고 빌고, 명절로 정해 기억해야 했던, 아주 중요한 뜻의 달. 만약 그게 있다면, 우리는 그걸 잊고 살아서는 안 되는것 아닐까. 달이 거기 있는 한은 그 뜻 또한 여전히 거기 있다는 것일 테니 말이다. 현대인은 추석이 보름 달 뜨는, 달이 주인공인 날이 아니라, 그저 며칠 쉬는 날, 쉼, 그것에 포인트가 있다. 여타의 명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명절들은 그러나 거의 다 달과 관련 있는 날이다. 과거의 우리는 월력을 썼었다. 지금도 캘린더를 ‘달력’이라 하지 않나. 당연히 달과 밀접한 것이 우리의 삶이었다. 태양력이라는 것이 나오기 그 이전부터, 우리는 달의 움직임에 삶을 연결하고 살았다. 왜? 그것은 달이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현대의 과학 이전에 벌써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이 기울고 차고, 월식이 되고 그믐이 되는 것은 바로 삶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달이 없으면 이 지구의 생물은 살 수가 없다. 춘하추동, 계절을 만드는 것도, 밀물과 썰물도, 생물의 탄생과 죽음을 만드는 것도 달이 하는 일이다. 그 달이 지구에 가까워 졌다 멀어졌다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대로, 이 지구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달 뿐만 아니라, 옛 사람들은 천체의 움직임, 즉, 해와 달과 별의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이해하고, 그 변화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았다. 그 속에서 탄생과 소멸, 무상에 대해 체득했고, 이러한 사실의 중요성을 알아, 그 움직임에 삶의 패턴을 맞춰 살았다. 문제는 달이 아니다. 우리 삶이다. 우리 삶이 자연의 운행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서, 그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고, 수많은 ‘달 타령’도 그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명절로 정해 달맞이를 가고, 달을 노래하고, 계절이 가고 옴을 사색하였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쉬는 날이어서 추석이 아니고, 추석이 가진 의미이다. 요즘 누가 추석에 달을 생각하랴! 달 뿐이랴, 고유의 명절들도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자고로 그 어디든, 주객이 전도된 세상에서는, 그 진의는 사라지고 허의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한다. 오늘의 요지는 이것이다. 전도顚倒된 삶. 명절의 의미보다는 놀기 때문에 명절인 것처럼, 현대인은 진정한 나, 보다는 세상을 의식하고, 타인의 잣대에 휘둘리며,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사는, 전도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좋아서 보다는, 남들이 그러니까, 그렇게 따라 행하며, 진의 보다는 허의를 더 진짜인양 여기며 산다. 삶의 이러한 오류의 누적에 의해서, 작금의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버리고, 모를 것들에 사로잡혀 산다. 이것은 도道가 아니다. 불가에서는 전도된 삶을 경계한다. ‘어리석은 원숭이는 물속의 달을 움켜쥐려 수없이 노력’하지만, 정작 달은 그곳에 있지 않다. 우리는 전도된 삶을 살면서 진정한 달이 내게 있음을 아지 못하고, 어디 밖에서 구하면 얻어질 듯이 그렇게 산다. 또한 그래서, 달 밝은 밤에 달 한번 쳐다보지 못하며, 바쁘게 어디론가 가고, 있다. 현대의 달은 아마도 많이 쓸쓸하리라, 지구를 더 이상 밝히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보신 화신은 진이 아니고 망령된 인연. 법신은 청정하고 넓어 가없음이라, 천강에 물이 있어 천개의 달이 뜨고, 만 리에 구름이 없어지니, 만 리가 하늘이로다.’ -종경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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