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로차나
한해가 가고 있다고 해야 하나 새해가 오고 있다고 해야 하나. 한해가 죽고 있다, 라고 하면 당신은 싫으려나, 아무튼 제자리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무상하여서, 정유년 한 해도 우리의 업식 저 너무로 숨고 있다. 해마다 그래왔듯 세상엔 깜짝 놀랄 만한 사건도 있었고, 개개인 에게는 좋은 일, 슬픈 일, 죽을 만한 일도 있었겠지만, 그럭저럭 살만 해서 또 한해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중의 입장은 늘 오늘, 에 있기에, 오고가는 것에 아무 마음이 없지만, 속세의 이런저런, 이름달린 날들에 완전 무관하게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연말과 새해라는 이름 앞에서도 그렇다. 이름은 있으나 한밤중 새해를 맞이하고 보면, 12시 일 분 전과 뭐가 다르단 건지, 싶지만, 매일 밥먹다가 어느 한날 갑자기 떡국을 먹는 것처럼, 인생에 있어 이러한 특별한 일들을 만들어 안 하면 실로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연장선의 하나로, 연말엔 집집이 트리를 만들고 상가와 거리는 불빛으로 장식하여 온 세상을 반짝이게 만든다. 빨리 어두워지는긴 겨울, 트리를 비롯한 이런 저런 불빛으로 캄캄한 겨울밤이 한하게 밝아지면, 어쩐지 어둠도 따스해 지는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일 것이다. 캄캄함이 오래 지속되는 시절엔 작은 촛불 하나, 작은 외등 하나는, 옛날부터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도 나도 무슨 이유로든 작은 등블을 내놓기 시작하고, 거기에 종교 이름을 빌어 장식된 불빛들이, 상업의 힘으로 점점 업그레이드 되면서, 연말이면 아름다운 불빛이 온 도시를 예쁘게 빛내게 되었을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전래되는 것들은 그 의미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 좋은 점이 확실히 있다. 늘 해 오던 것이어서 무감각한 채 지내기도 하고, 또란 말인가, 때론 신물난다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여겨지며 삶은 지속 되는 것이다. 연말에 애써 장식한 트리가 확, 하고 밝아질 때, 지붕에서 미끄러져가며, 장식한 전구들이 일제히 반짝일 때, 순간의 그 환히로움을 느껴분 사람 중엔, 순간, 뭔가 지중한 것을 깨달은 이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어둠을, 우리 맘속의 어둠을 밝히는 것은 빛, 임을. 밝음, 임을. 밝음이 주는 힘이 너무 좋아서,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도 밝음이요, 타인에게 밝음을 주는 빛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불가에서는 청정법신이신 비로자나불이 바로 빛, 그 자체이신 부처님이시다. 비로자나는 범어로 바이로차나, 빛이란 뜻이다. 진리인 그 법 자체는 밝은 지혜, 명, 이다. 명은 해와 달을 합쳐놓은 밝은 글자다. 해와 달처럼 예전의 빛은 때 되면 누구에게나 자연히 내려 비춘 것이었지만, 요즘 세상의 더 많은 빛은, 화력이든 수력이든 풍력이든 발전을 통해 빛을 낸다. 이것은 이 산승에겐 대단히 의미 삼장한 이야기다. 예전에, 그 빛이 사라지지 않기를, 오래 더 밝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으로 족했다면, 지금 시대는 스스로 발전하여 스스로 빛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현대인은 해와 달과 별 말고도, 더 많은 빛의 혜택 속에 살다보니, 오히려, 밝음에 대한 간절함이 예전에 비해 덜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스스로 늘 발전해야 함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누구의 빛으로 이렇게 밝게 사는지, 누구의 자력 덕분에 내 삶이 어둡지 않은지, 생각조차 안 하는 것은 아닐까. 빛이 되는 일이야말로 인간 일대사인데도 말이다. 연말에 한번쯤, 빛이 되고자 생각한 이가 있기를. 빛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있기를. 빛을 나눠주는 이가 있기를 발전이 있기를.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