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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착(放下着)

          미국에 오기 전에는, 캘리포니아는 사시사철 태양이 빛나는 여름날 같거니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이란 노랫말을 들으며, 사시사철이 따스한 그런 곳을 상상했었다. 상상은 언제나 현실과 어긋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리라. 살아보니 이곳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四季가 있다. 영화사의 정원 풍경도 계절마다 다른 얼굴로 바뀌며, 가을에는 당연히, 주홍빛 베롱나무를 비롯해, 샛노란 은행나무, 빨간 단풍나무, 적갈색의 감나무…등등의 색색의 단풍이 든다. 그리고 속절없이 후루루, 떨어져 사라진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의 그것 같지는 않지만 역시 가을은 가을이다. 가을빛을 받아 투명한 오색 단풍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름날의 한결같던 저 푸른빛에서 어떻게 저렇게 각각의 다른 빛깔이 나오는지, 경이롭기만 하다. 저 성하盛夏의 잎과 꽃 어디에서도, 가을 단풍의 징후는 조금치도 볼 수 없었건만 말이다. 가을엔 사람이 조금 낭만적으로 변하는 것일까. 단풍진 잎새를 보고 있다 보면, 저 푸른 청춘을 다 보내고 이제 만추晩秋의 시절을 맞이한, 나름대로 자신만의 빛깔로 물든, 영화사의 나이 지긋한 이들이 보이고, 그들은 지금 자신의 빛깔이 마음에 들까, 그리고 저 단풍이 곧 낙엽되어 흩어지듯이, 가진 것을 다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니, 준비 이전에 머잖아 질 것임을 알까, 쓸쓸한 상념에 젖게 된다. 가을 나무 저 스스로는 모르리라, 언제쯤 자신이 가진 잎을 다 떨구게 될지. 그러나 알 것이다. 모두 버려야 할 때가 있음을. 사람도 마찬가질 것이다, 자신이 이제 질 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만추이건만 아직도 푸른 청춘이라고 여기는 이도, 그리하여 내려놓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이도 많을 것이다, 가을 숲이 절절히 아름다운 것은 곧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는, 그 무상한 한계성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곧 지게 되리라’ 시시로 챙겨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무궁한 세월동안 푸르기만을 꿈꾸는 이도 주변에서 종종 만난다. 그리고 누구랄 것도 없이, 살 일엔 분주해도, 가야 할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산다. 백세 시대인 것이다. 누구나 오래 살 것을 믿는다. 과학이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무상하다. 온 것은 반드시 간다. 그렇다면, 만추의 시점을 어디로 보아야 할까. 만약 지금 당신이 살아온 날이 살 날 보다 많고,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면, 그리고 이젠 웬만히 힘든 일 다 끝났다 싶고, 앞으로는 특별히 좋을 일은 없으리라 여겨진다면, 바로 그때가 바로 하나씩 잎을 떨굴 준비를 해야 할 대이다. 인생의 가을날에 가장 풍부한 빛으로 가득차 있을 때, 바로 그때. 하지만 가장 빛나기에, 그것을 내려 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여, 그때에도 우리들은 ‘조금 더’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그만’을 해야 하나. 단풍 물들고 지는 시기를 알려주는 단풍지도 같은 것이 우리 인생에도 있다면, 우리는 아름답게 물들고 지는 법을 알 수 있을 지도 모르련만. 아지 못하기에, 맘껏 타오르지도 못하고, 질 준비도 못하고, 어정쩡, 언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채, 시나브로 진다. 그렇게 가는 이들을 보면 슬프다. 그런가, 과연. 우리는 정말 버릴 때를 모르는 것일까. 어쩌면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미련과 욕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타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어쩌면 빨리 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상록수처럼 영원히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아는가, 저 가을 숲은 이미 모든 걸 버릴 준비가 된 자들만이 누리는 축제이다. 제때에 나를 버릴 준비가 없는 인생에는, 인생의 하일라이트, 지기 직전의 그 아름다운 축제 또한 없을 것이다. 법을 물으러 온 엄양존자에게 조주스님께서는 말씀하셧다. ‘방하착放下着! 다 내려 놓게나!’  이 가을엔 방하착, 이 말씀 한마디, 마음에 품어 봐도 좋을 듯싶다. 때가되면 풀풀풀, 자유로이 흩날릴 준비, 다 내려놓을 준비. 그 준비만으로도 남은 생, 충분히 행복하고 자유로울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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