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일전에 노보살님이 오셔서 글이 좀 어렵다시며 좀 쉬운 얘기도 써달라고 하셔서, 아주 쉬운 얘길 해볼까 한다. 출가 전, 사회 초년생으로 세상살이 사람살이 익숙치 못한데다, 쓰잘데 없이 정의감은 거세서 날마다 사방 으르렁 대며 지내던 때였다. 오욕칠정 휘두르며 좌충우돌 하다, 정말 진저리 나서, 작품 핑계로 산사로 도망쳤었다. 큰절 뒤 산 꼭대기에 있던 그 암자에는 요사채가 계곡 건너 따로 떨어져 있었다. 들기 어려운 산사에 큰절 어른스님의 인연으로 겨우 얻어낸 방사였고, 절법에 어긋난 행을 하면 쫓겨난다, 다짐을 받은 터라, 허락된 공양, 예불 시간 외엔 스님채 쪽은 아예 출입을 삼갔다. 다만 어른스님 당부로, 속세에서 건성해오던 참선을 조석으로 맹열히 하였다. 두어 달 후, 다죽게 생겨 들어간 절에서 심신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새소리, 바람소리, 숲의 향기가 비로소 느껴졌다. 어느날, 늘 그랬듯 오전 일과를 마치고 방문을 열고 무심히 앉아 있는데, 홀연히 절 담을 돌아 스님 한분이 쓱 나타나셨다. 담장 너머 온 개나리 꽃 아래 스님 주변이 확. 하고 밝아졌다. 그때부터다. 후원에 괜히 가서 공양주 보살님 옆에서 미나리를 다듬고 설겆이를 하면서, 스님채를 열심히 기웃거렸다. 그러나 객스님은 머리카락도 안보였다. 안보이니 관심도 시들해질 무렵의 어느날, 대중 공양방에 신발이 보이길래, 누가 왔나 싶어 문을 여니, 넓은 장판 위에서 객스님이 요가를 하고 계시다가, 그 자세 그대로 '머요 ?' 하고 책망하듯 물으셨다. 죄송 소리도 못하고 얼른 문을 닫고, 요사채로 냅다 뛰었다. 냉정히 바라보던 그 눈이, 그러나 너무 투명하고 아름답던 그 모습이 눈에 밟혔다. 하지만 실상은 다시 객스님 마주칠까 겁나서 공양만 끝나면 처소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그 며칠 후, 똑같은 오전 일과 후 방문을 열자, 암자쪽 계곡 징검다리 앞에서 객스님이 계곡물에 삭발을 하고 계셨다. 몸을 숙이고 삭발을 하고 계셔, 나를 보지 못하는게 너무 다행이었다. 혹여 기척이라도 내면 들킬까 싶어 꼼짝도 안했다. 시간이 멈췄다. 바람도 햇살도 새소리도, 충만한 봄도, 모든 것이. 다만 스님의 움직임 뿐. 그때 스님이 삭발을 다 마치신 후 고개를 드시는데, 그 순간 이 중은 아마도 한 도 했지 싶다. 마냥 경외스럽던 마음도, 봄바람처럼 일렁이던 마음도 일순간에 날아갔다. 마음이 활짝 열리며 새털처럼 가벼워졌고, 실없는 웃음이 자꾸 나왔다. 계곡에서 몸을 일으킨 스님은 객스님이 아니라 주지스님이셨다. 나는 산사에 온 목적을 다 얻은 듯 하여, 그날 오후 바로 하산 하였다. 그 봄밫 충만했던, 날아갈 것 같던 하산길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그것이 출가 이유는 아니지만, 결국 나는 출가 하였다. 자신이 만든 세상 말고는 중생에겐 다른 세상이 없다. 자신이 얼마나 세상을 틀,리,게, 보는 줄도 모르고 자기 잣대를 들고 산다. 더 안타까운 건 자기가 만든 그 세상에다 남을 넣으려 한다는 것이다. 남의 세상 상관없이, 불교는 이런 거고, 정치는 이런 거며, 며느리는, 자식은 ...본인이 정해 놓은 세상에 서서, 나와 다르면 시비하느라 괴롭다. 왜 세상은 본인 생각과 달리 굴러 가는지 생각해 본적 있는가 ? 당신 마음이 만든 것을 어찌 세상이 알 수 있겠는가. 세상 정보란 정보는 다 알아도, 자기 마음 하나만은 몰라서, 어둠 속을 헤매이는 게 중생살이다. 마음 하나 알아내면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된다. 본인이 평생 알던 세상이 '없음'을 알아, 해탈의 세상에 진입하며, 참 주인공으로 살게 된다. '일체유심조'요, '수처작주' 다. 이 중의 얘기가 아니다. 부처님 말씀이다. 불교는 마음수행이 근본이다. 그 한마음을 반드시 깨달아 알겠다는 간절함이 없으면, 이미 불제자 아니다. 봄날은 그냥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