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세상
최신형 스마트폰이 생겼다. 안되는 게 거의 없다. 말 그대로 ‘스마트’다. 당사자도 모르는데 아프리카 토착민에서 영화사까지 온 세상이 담겨있다. ‘일미진중함시방’이다. 평소 미진 가운데 온 세상이 들어있다, 는 부처님 법을 전해도 어쩐지 상대에게 절실히 가 닿지 않았던 것을, 스마트한 웹세상이 한마디로 말해준다. 그 웹세상은 현 세상과 밀접 되어, 그 경계를 짓는 거 자체가 이미 모호해졌다. 그 세상이 이 세상이고 이 세상이 그 세상이다. ‘전도몽상’이다. 작은 기기 하나가 온 세상을 담고 움직이는 모양새는 인간과 아주 흡사하다. 지구 전체에서 보면 한 개인은 작은 먼지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안엔 세상 전체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네가 곧 이 우주라 해도 사람들은 잘 믿지 않는다. 먼지가 곧 너,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자기가 모르면 그게 없다, 주장하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관세음보살님이나 귀신, 같은 것은 다수의 현대인들이 부정한다. 그런데 디엔에이, 미토콘드리아, 뉴런, 식으로 말하면 믿는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디엔에이를 아나? 똑같이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부처님이 그렇다, 하는 거 보다 구글이 그렇다, 하면 더 믿는다. 많이 이상하게 스마트 해서다. 진짜 스마트한 현대 물리학은 드디어, 모든 물질을 쪼개고 쪼개면 전자, 광자를 넘어, 쿼크,힉스 같은, 없다, 있다, 라고도 말할 수 없는 존재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곧 공이다, 라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아인슈타인 이후 정체되었던 사고 쳬계가 조금 움직인 느낌이다. 사람의 몸은 수많은 박테리아와 미생물들의 집합체이며, 그중 휴먼, 이라고 할만한 부분은 10중 1에 불과하다고도 한다. 사람 몸은 결국 모든 우주 생명체의 공동 생활 터전이며, 실은, 인연 법칙으로 잠시 모인 상태일 뿐, 인 것이다. 부처님이 이미 삼천년 전에 설파하신 말씀이다. ‘일미진중함시방’이라고. 물방울 하나 하나가 곧 바다인 것과 같다. 당신이 스마트폰이라면 그 스마트폰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전기인가, 전자파인가, 구글인가, 당신인가. 스마트폰 당체, 물질이 아님은 바로 알아졌겠다. 그럼 정보? 그러나 당신 폰 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당신이 기록한 것도, 창조한 것도,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실은 스마트폰에 탑재된 정보 함량에 비하면 미진에 불과하다. 그 미진만 나,인가 탑재된 모든 정보까지가 다 나, 인가. 시시각각 변하여 어차피 이거다, 할 수 있는 실체가 없는데, 공인데, 어느 쪽이든, 의미 있나? 앞에서 말했듯이 과학은 이제, 물질은, 사람까지도, 쪼개면 다 공이다, 까지 왔다. 그래서? 그 쪼개져서 공이면 뭐? 여기서 과학은 길을 잃는다. 궁극에 도달한 많은 과학자들이 불교를 찾는 이유다. 부처님은 ‘진공묘유’의 답을 가지고 계시다. 공이지만 그 안에는 묘한 법이 있다는 거다. 마음이다. 마음은 연기하므로 시공이 너와 나 모두의 연결 고리와 연속성상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즉 ‘일즉일체이고 일체즉일’이니 세상은 곧 하나, 우리는 하나이다. 웹망처럼 인드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거미가 거미줄에 걸리지 않듯이, 이 세상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단 얘기다. 반대로 내가 썩으면, 빠르게 퍼져나가는 스팸 바이러스 처럼, 세상은 다 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은 그래서, 내가 이 세상을 맑히고 밝게 만들 의무가 있다. 세상은 내 것이지만 또한 온전히 나만의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너를 밝히고 세상을 밝히’라고 말씀하셨다. 익히 들어 당신들이 ‘잘 알고’있다 여기는 저 ‘자등명 법등명’의 유언이다. 그냥 아무나가 한 말이 아니라, 체득한 자의 대자대비에서 나온 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상을 위해 하신 유언이기 때문이다. 자등명, 지혜, 즉 스마트다. 지금은 싫어도 스마트한 세상, 이 스마트한 세상에 살려면 내가 먼저 스마트로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당신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