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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잘난 놈

2025-02-27

          얼굴이 화사한 이가 손님 스님을 대동하고 절을 찾아왔다. 스님의 소개에 의하면 이 이는 교학에 밝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가 이미 다르다. 이를테면 여자스님, 하지 않고, 비구니스님,식으로. 대충 봐도 식자로 불교 한 사람의 전형이다. 이곳 사람들은 무식한 이들은 몰라서 스님을 막 대하고, 유식한 이들은 잘나서 스님을 막 대한다. 불자 아닌 건 결국 같다. 불자가 아닌 이상, 중은 속인을 만날 이유가 없지만, 오는 이를 굳이 막을 순 없고, 꾀를 내어, 한 번 방문으로 그치도록끔 대한다. 이 우아보살은 여타의 이런류의 이들이 그러듯, 유명하고 높은 스님 함자를 나열하고, 그들에겐 한없는 존경심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앞에 앉은 이는 절대 그런 스님이 아니다. 한 번 방문 뒤, 절에 거의 안 나오다가, 영화사 이전 이후, 다시 나타나게 된다. 와서는 아는 만큼 절에 이런저런 참견을 하게 되는데, 한 예로, 자기가 틱낫탄 스님 일을 봐주는 이를 아는데 틱낫탄 스님의 슬로건인 '브리드' 글씨를 받아서 절에 걸면 좋겠다며 받아오겠다 한다. 나는 필요없지만 본인이 하겠다는 걸 막진 않는다. 그리고 받았다는 것이, 인터넷으로 다운 받은 breath 단어이다. 영화사 이전을 축하한다든가, 영화사 스님에게, 라든가 있다면 모를까, 내가 그 스님 제자도 아니고, 베트남 절도 아니고, 굳이 그 단어를 절에 걸 이유가 없다, 하곤, 이런 유명세 좋아하는 이가 있을 터이니 좋아하는 곳에 주는 편이 낫지 않겠나, 해준다. 그 이전에도 여러모로 시큰둥한 내 태도에 불만이 있어보였는데, 바란대로, 이후로 이이는 절에 발을 끊는다. 제발로 절을 등져주어, 지금까지도 뭔가 고맙게 여기고 있다. 좀 잘났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절에 와서는 대중과 섞이지 않고, 그 대중 속에 앉아서도 나는 다르다, 가 있다. 그런 이들은 한국 절에선 그냥 나그네로 여기면 그만이지만, 사람이 적은 이곳에선 신도도 서로 다 알고, 스님도 그 모두를 함께 대해야 하므로, 대중 화합에 방해가 된다. 한 명이 고깝게 굴면, 그 꼴이 싫은 이가 나오고, 공양 하나도 편히 하기 힘들어진다. 이럴 때, 부득이 그들을 보낼, 방편의 카드를 쓰게 된다. 그들이 실수 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잘난 이들은 반드시 나대기 실수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그 나대기를 지적받게 되면, 바로 절에 안 온다. 불심이 없어서다. 내 기준의 불심이란, 일단, '절에 가져가는 쌀은 아무리 멀어도 땅에 절대로 내려놓지 않는', 자세다. 그런 모습만 보며 살아온 스님들은 처음 여기서 불자를 대하게 되면, 내가 문제가 있나? 하게 된다. 방문차 왔던 한 스님은, 이곳 사람은 경제적으론 부족하지 않은 지는 몰라도, 정신은 문제가 많은 거 같다, 고 했다. 그 스님 표현이 딱 맞지는 않으나, 난 그 스님의 심정이 뭔줄 안다. 남녀노소를 친구 대하듯 하는 미국식 태도가 스님에게도 적용되는 것인데, 스님들에겐 그게 익숙치 않다. 한 예로, 스님을 보면 합장 저두가 기본인데, 허그를 하려 달려든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러나 미국식 태도는 그들 것이고, 절법은 미국식과 아무 관련 없다. 상처를 감수하고라도 옳게 법을 세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꾸중이란 것이 상대가 받아들이면 가르침이 되나, 대들면 그건 가르침도 뭣도 아니고 쌍방 싸움이다. 중에겐 그처럼 당황스런 일도 없지만, 속인과 싸울 수도 없다. 그렇다고 대드는 이를 볼 수도 없다. 이런 때면, 오가는 신도가 누군지도 모르고, 오가는 신도 또한 그 절에 사는 스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법회 같은 행사날이나 돼야 상호 얼굴을 보게 되는, 신도로부터 자유로운 한국에서의 절 환경이 그리워 진다. 뭔가 그립다는 건 지금 여기 없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는동안, 우아보살의 경우처럼, 당자가 보내진 줄도 모르게 보낸 인연도 많았고, 알게 보낸 이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상처받고 떠나는 일은 없게 하고 싶지만, 어떤 이별이든 쌍방 상처 없는 이별은 없다. 그 상처는 스틸 고잉이다. 그럼에도 여길 뜨지 못하는 이유는, 애초 뜻한 바의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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