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한 노인이 절에 찾아온다. 나는 이사 준비로 분주한데, 올구가 와선 아무래도 내가 만나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마주 앉고 보니, 오래 고생한 흔적이 온 몸에 묻어 있는 노인이다. 찾아온 연유를 물으니, 지금껏, 교통사고로 동시에 보낸 딸과 사위의 제사를 혼자 지내왔다, 그런데 이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서, 만약 그렇게 되면 딸사위 제를 지낼 사람이 없겠다, 궁리 중 절이 있단 얘길 듣고 왔다, 올 때만 해도 긴가민가 했는데, 스님을 딱보니 믿고 맡겨도 되겠단 생각이 든다, 자식 위패와 소지품 몇 가질 가져왔으니 맡아 주시라, 한다. 그리곤 기도비라며 랩으로 꽁꽁 싼 뭉치를 내민다. 보나마나 살면서 원달러, 투달러 오래 모은 힘든 돈일 터이다. 나는 그걸 날 주면 안되고 불전함에 넣으라고, 나는 말한 거는 반드시 지키니 기도는 걱정말라고, 지금은 바쁘니 차후 연락할 연락처를 남기고 가라, 한다. 노인은 늙어 운전도 못하고, 혼자 다시 오기는 힘들거라 하며, 올 때 처럼 조용히 사라진다. 내일 당장 이사를 해야하는데 돕는 이도, 경비도 없어서 맘이 바쁘다. 뿐만 아니라, 절집 고치는 일꾼은 마쳐주겠다던 오늘까지도 일을 끝내지 않고 있는데, 보아하니, 잔금을 안 줘서 그러는 듯하다. 한국서 가져온 비상금까지 절 사는데 다 써버려서, 여유돈이 아예 없다. 이럴 때나, 저 타이어 플랫 된 날 같은, 시급히 도움이 필요한 때라도, 이곳엔 도움을 청할 그 누구도 없다. 바라지도 않는다. 이곳에서의 나의 기본 자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황야에 서있는 나무 한 그루 처럼,' 이다. 하지만 다 해결 될 거라 믿고 있다. 이때의 나는 미국을 뜨고 싶을 때마다, 차 드문 구 고속도로 16을, 동으로 무작정 달리다 돌아오는 습이 있었다. 거기 늘 달이 있어서다. 특히 보름이면 테이블 만한 둥근 달이 떠서 시름을 달래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길 위에서 오늘의 영화사가 될 집을 만난다. 빛바랜 글씨의 부동산 싸인이 붙어 있던, 풀과 잡목에 뒤덮인, 오랜 서부영화에서 보던, 랜치 같이 생긴 폐가이다. 매번 보고 지나쳤지만, 어느순간, 그냥 그 집이 내 집이다, 여겨진다. 집은 고치면 되고, 이제 보살 절이 아닌, 스님이 세운 진짜 절을 열 시절인연이 도래했음을 안다. 복덕방에 연락하여 값을 안 뒤, 올구, 추구, 삐를 앉혀놓고 가타부타, 각자 갖고 있는 여유돈이 얼마 있냐고 묻고, 그거 나 떡 사먹게 달라고 한다. 그들은 어리둥절 하지만, 아무튼 가진 돈을 가져온다. 떡 사먹게,라 한 이유는, 이곳 사람들은 보시라는 개념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차하면 물러달랄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믿기 힘들지만, 실지로 그런 일이 이곳의 다른 절에서 이미 있었다! 암튼, 최소한의 필요한 법정 리밋 디파짓 금액 반이 그들 셋과 나중에 합류한 후원자 부부의 보시금으로 마련 됐고, 모자른 나머지 반은 나의 개인 비상금 전부를 합하여, 그 폐가를 산다. 그리고 일꾼을 사고, 리노베이션을 맡기곤, 무사히 절을 옮길 수 있길, 조석으로 기도한다. 이삿짐 차도 따로 부를 수가 없어서, 집 고치는 일꾼이 물건을 사러 나올 때마다, 살림살이를 그 차에 조금씩 실어 옮긴다. 이삿날 오후엔 대중이 모두 도우러 왔다. 이삿날 아침, 부처님 만은 차마 일꾼 트럭에 못 싣겠어서, 수소문 하여, 마침 도와줄 수 있다는, 밴을 가진 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어제의 노보살이 생각나서 불전함을 연다. 꽁꽁 싼 랩을 벗기니, 원 달러가 아닌, 백 달러 지폐로, 적지 않은 돈이 담겨있다. 무사히 이사를 마친다. 그때부터 십 오 년 넘어 지금까지도, 그들의 제사기도는 잊지 않고 올리고 있지만, 그 노인은 단 한 번도 못 만났다. 그이 덕분에 일꾼 품삯에다, 이사를 무사히 할 수 있었다. 관세음보살님 화신인가 믿어졌다. 한 번쯤은 만나 인사하고 싶어, 그 보살이 산다던, 리노에 가서 열심히 그 노보살을 수소문 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지금은 세상을 뜨고 없을 거라 믿어진다.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고, 상품상생을 믿으며, 내세에 다시 만나면, 이 고마운 빚을 꼭 갚으리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