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스님 한 분과 함께 케이가 찾아온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스님이 한국 절이 있으면 가보고 싶다 해서 무작정 모시고 왔다고 한다. 케이는 베이 지역에 살고 있고, 캐톨릭 신자다. 신기하게도 다른 이교도와 달리, 스님에 대한 기본적인 예를 갖추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불자의 자세라기 보다는, 신부나 수녀님에게 하는 식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것만으로도 예의 없는 이곳에선 감지덕지다. 코메리칸이, 게다가 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 지나가는 스님에게 관심을 갖는 일도 흔치 않거니와, 스님이 청했다고, 베이에서 새크라멘토까지 운전을 해서 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미 된 사람이란 뜻이다. 그래서 나는 케이를 첫 대면에 내 세상에 들이기로 한다. 그동안 공식 비공식적으로, 스님 포함 이곳을 스쳐 다녀간 손님들이 많다. 그들은 생각없이 그냥 오지만, 방문자를 받는 입장에선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무작정 만나야 하고, 모든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부담스런 일이다. 한국처럼 공양주가 있거나, 시자가 있거나, 손님 치를 자원봉사자를 부르거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본 하루의 루틴만로도 매일 곤곤하다 보니, 손님을 반기거나 대접에 늘 친절할 수 없었다. 해서, 지나가는 손님 안 받은지 오래됐고, 또한 방문 이후 연락을 한다거나, 내 세상에 들인 이는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케이와 동반한 스님은 예외가 됐다. 미국 와서 같이 포교하며 살자, 청을 할만큼ㅡ서류에 필요한 건강검진에서 지병이 벌견되어 아깝게 무산되긴 했지만ㅡ흔쾌했던 건, 그 바른 성정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인연 된 케이는 현재까지도 영화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다. 케이가 무엇보다 귀한 인연인 것은 영화사의 기둥이 되어주고 있는, 화주시주보살을 인연 지어준 일이다. 절에 급히 도움이 필요할 때면, 군말 없이 툭, 보시를 해주고 있는, 제이와 와이를 영화사에 데려와 준 당자가 케이인 것이다. 현재 영화사를 유지하고 있는, 이사 격의 신도 5명 외에, 제이는 누구보다 더 영화사 유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매달 절 유지비를 내는 5인에겐 엑스트라 보시 얘길 하기 어렵다. 그게 맥시멈 임을 알아서다. 그러나 그 어느 곳이든 살림살이엔 계획에 없던 돌발 상황이 항상 발발한다. 만약 제이가 없었다면, 현재 영화사 현상 유지는 굉장히 벅찬 일이 되고, 매달 지출할 돈에 매달려 사는, 중답지 못한 삶을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신도들은 매주 법문도 듣고, 외로운 미국에서 언제든 갈 수 있는 공간도 가지며, 공양, 울력, 소풍같은 소소한 일상을 스님과 함께 하기도 하지만, 케이와 제이, 와이, 그들에게 내가 해주는 건, 기도와 축원 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에 가치를 두고 함께 동행 해준다는 것은, 물질 세상 이곳에선 웬만한 공덕 갖고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는 보시한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받지 않으며, 보시금을 함부로 사용하지도 않는다.ㅡ함부로 사용할 보시금도 없지만ㅡ 메인터넌스만 된다면 된다고, 중은 풍족하면 안된다고, 애초 마음 먹었던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 없다. 현상유지엔 예비비가 없다. 그래서 큰 지출 필요한 돌발 상황이 오면 막막해진다. 신도 돈은 그 어디서든 무서운 것이지만, 특히 돈이 최우선인 이 땅에서는 공짜 돈이란 없어서 더 무섭다. 이곳은 연등비 보시하라 하면 이유가 많아도, 전기세라고 하면 바로 납득을 하는 그런 곳이다. 절에 보시하는 것도 그들에겐 이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질적으로 기브 엔 테이크의 관점이다. 잘못은 아니나, 그런 관점에선 무형의 기도와 축원에 유형의 그 무엇을 내어줘야 한단 생각을 아예 못한다. 그런 곳엔 아무리 비상이라고 해도, 말 붙일 념이 나지 않는다. 해서, 제이처럼, '이제 나이들 만큼 들었고, 자식도 다 키웠으니, 모은 재산을 어디 좋은 곳에 환원하고 싶어,' 하는 그 자리는 절공양에 대고 밥값 운운하는 사람들과는 애초 근본이 다르다. 돈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신중님처럼 여기고, 늘 잊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