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에 미국 와서...어김없다. 노보살은 오늘도 처음인 듯이 과거사를 시작한다. 일단 시작되면, 중간에 애써 끊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계속한다. 노보살은 귀는 들리지 않은지 오래 됐지만, 이제는 시력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지병도 있지만 90 넘은 나이 탓이다. 어릴적 미국에 홀로 와서, 필설로는 불가능한 허드렛 일로 어려운 세월을 살다가, 어렵게 직장을 잡고, 미국인과 결혼하고, 남편 잃고 혼자 자식들 돌보며 힘들게 산 눈물겨운 세월...미국 오기 전 내가 알고 있는 미국에 사는 사람이란, 영어 특히 잘해서, 외국 여행하다 미국 친구 만나 결혼하는 경우거나, 가족이민 가서 살게 되는 경우, 혹은 주재원이나 유학생이었다. 그래서 노보살 얘길 처음 들었을 때 저으기 충격이었다. 그래, 이런 이민사도 있구나, 너무 몰랐구나, 동족으로서 반성도 있었다. 교육과정 속에서 미국 이민사를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 없진 않지만, 이곳 나이든 교포 중엔 전쟁 후 한국에 파병온 군인을 만나 결혼해서 온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노보살도 미군과 결혼하긴 했지만, 집이 너무 가난해서 먹고 살려고 온 케이스다. 와서 동생들까지 불러 키우며 악착같이 살았는데, 겨우 삶이 필 만 하니까 남편이 죽었다. 자식들도 장성해서 다 나가고, 외따로 떨어진 저택에서 홀로 살고 있다. 노보살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환자였다. 그래서 절에 못온다 하므로, 한번 만난 인연이지만,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된다. 이유는 노보살이 첫번째 영화사의 집주인이었기 때문이다. 나와는 무관하다 해도, 쓸데없이 의리 좋아해서 안할 일도 사서 하는 편이다. 대부분 대중과 같이 갔지만, 혼자서도 한동안 절 명절이나 노보살 생일 같은 때에 자주 방문 했었는데, 혼자 찾는 것을 그만 둔 것은, 어느 하루 그때 마침 와 있던 아들이 너무 거칠게 굴어서다. 노보살은 눈이 희미하니 그 아들이 내게 보인 분노를 보지 못한다. 겉으로는 태연하게 아들을 대하고 나왔지만, 절대로 혼자 움직이지 말자, 굳게 마음 먹은 날이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소리지르며 혼자 화를 낸거였지만, 폭력으로 느껴졌다. 시선을 마주쳐도, 스님 따윈 내 알바 없다 식의 태도를 보고, 나는 다시 한번 미국인에게 스님은 뭔가,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스님이 아니어도, 엄마의 손님이다. 이곳에 살수록 스님이란 정체성에 자주 회의가 든다. 엄마가 한국인이어도, 불자여도, 그 자식은 아니다. 그 자식은 미국인이라 스님도 모르고, 엄마는 그 자식에게 한국 불교 정서를 알려주지 못한다. 엄마 말을 듣지도 않고, 사상에 침해받지 않을 권리는 그들의 것이다. 미국이 쓸쓸한 건 이런 것이다. 정서 소통의 부재다. 최근 한국 쇼츠를 보는데, 드라마 속의 엄마가 자식 등짝을 막 때리고 머리도 쥐어박고, 왜 직장을 관두냐며, 왜 결혼 안하냐며, 소리를 지르는데, 전 같으면 그게 사랑으로 보였을 것이, 너무 폭력적이다 싶고, 다 큰 딸이 왜 엄마 집에 있나, 이상해보였다. 미국물이 든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나요, 너는 너다 식의 미국 부모 자식간이 익숙해지진 않는다. 마치 콩 속의 팥처럼, 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은 관계속의 고립을 겪는다. 함께 살 때도 가족과 혼연일체가 되지 못하고, 남편이 죽고 혼자가 되면, 그나마 있을 땐 몰랐던, 오래 알던 모든 패밀리가, 내가 낳은자식들 조차도, 겉모습이 나와 다른 인종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노보살처럼 자식이 있다 해도 남이고, 한국말 하는 한국인이 늘 그립다. 하여, 종교를 빌미로 와달라 청하고, 매번 만나면, 말을 한시도 쉬지 않는다. 심중의 정서를 완벽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이어서, 그 가슴속 말을 오래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한다. 어릴적 고향의 진달래가 그립다는 말을, 미국인 그 누구에게 하겠는가. 절해고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