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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호더

2026-10-29

          이 냉장고 다 비우고 청소좀 할까요? 하자, 제이는 금방 안색을 달리 하고는 아무것도 건들지 말라 한다. 냉동실과 냉장실은 금방이라도 모든걸 토해내게 생겼는데 딱 봐도 최신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오오래된 것들이다. 거실 탁자 위엔 광고지며 우편물이며 약이며 뭐며 거의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장식장 마다마다 힌곳도 빠꼼한 데가 없다. 거실 바닥 또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집기들로 가득차 있지만, 모두 실생활에 소용 닿지 않는 물건들이다. 제이에게 안부 전화 중, 오늘 지붕을 때우다 허리를 삐끗했다는 얘길 듣고, 모른척 하기 힘들어서 방문 중이다. 지붕에 올라가 콜타르 바르는 일을 돕고 내려와, 점심을 해준다 하여 주방에 들렀다가, 꽉찬 냉장고 안을 본 것이다. 지붕이 새면 사람을 부를 일이지  왜 지붕엘 70 노인이 올라가느냐고 하니, 돈이잖아요, 한다. 이곳 사람들은 돈이라면 단 원달러에도 민감하므로 더 말을 못 보탠다. 점심 하는 거 돕겠다고 하자, 그냥 앉아 있으라 해서 이곳저곳 서성거린다.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침실에는 언제적 것인지 알수 없는 옷들과 천연기념물 같은 빠알간 밍크 담요까지, 마치 낡은 영화 속의 고물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치우자, 한마디에 강한 저항이 돌아온 것이다. 물건 흔한 땅인데, 이곳 노인들 중엔 물건 못버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옷도 몇 십 년전 유행하던 것을 그냥 다 입고 다니고ㅡ새옷이라도 스타일은 '그때' 이다.ㅡ옷장에 몇 십 년치를 그냥 채워두고 있다. 쓸모없는 한국 아리랑 부채라든가 한복 입은 인형들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색바랜 채, 서양식 집에 채워져 있는 걸 보면, 어딘가가 망가진 한국을 보는 느낌이다. 이곳 노인들은, 특히 오랜세월 이곳에 산 사람들은 저 떠나올 그 당시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외부인과의 교류가 없고 한국과는 오래 전에 멀어져서,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잃은 채, 현재와 과거 그 어디쯤에 갇혀 있다. 한국마켓 거리에서 오래된 영화에서 튀어 나온 듯한 한인을 만나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된다. 이곳은 그 누구도 누구의 복장 가지고 시비걸거나 참견하는 곳이 아니라서, 아무도 현재의 자신이 어떤 괴리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때로 신기해서, 그거 너무 오래 된 거 아니예요? 하고 말하면, 이래뵈도 이게 명픔, 이라고 한다. 재력 여하를 막론하고 거의 그렇다. 혼자 할라면 힘드니까, 나 온김에 거실이랑 냉장고 다 깨끗이 정리해요. 못쓰는 믈건들 너무 많아요, 버리면 소용닿는 곳에 쓰이기라도 하지, 두면 그냥 평생 거기 쌓여있는 거잖아요. 안 쓰고 그냥 그 자리에 쌓여 있으나, 어디 먼데 쌓여 있으나 똑같은 거 아녀요 ? 하니, 차가운 답이 돌아온다. 스님은 모르시겠지만 나는 배곯아봤어요, 그게 얼마나 무서운건지 몰라, 난 하나도 버리기 싫어요, 자꾸 버리라고 할거면 스님도 그냥 가셔요, 한다. 거의 무슨 분노에 찬 사람처럼 너무 단호하게 소리를 질러서 당황한다. 이것은 설득으로 될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소통 자체가 안되는 일임을 금방 알게 된다. 이때는 스님이 뭔 말을 하면, 그것이 도움이 되는 일이면, 들을 줄 알았던 때라 여러번 시도 했지만, 지금은 고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서 안 한다. 일전엔 다른 신도의 벽장을 전리해준 적이 있는데, 조그만 벽장 안에서 오래된 조리며 프라스틱 바가지 등둥이 방안 가득 채워질 정도로 나왔다. 다 버리자, 했더니, 버리겠다 하면서도 주섬주섬 도루 벽장에 넣었다. 다시 버리라 못하고 그저 웃었다. 그 누구든 호더는 자진해서 치료하겠다 나서지 않는 이상은 죽어도 못고친다고 본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이곳의 노인들은 거의 모두가 호더이거나 호더 근처에 있다고 보여지는데, 이런 지경에 도달하기 까지의 원인을 알겠어서 안타깝고 막막해지곤 한다. 호더가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곳의 호더는 혼자만의 성에 갇혀 쌓고 쌓는 이유가 과거의 결핍에서 온 것이다. '현재 많이 가지고 있다'는 그들애게 안정감을 준다. 해서, 그들은 쌓아두는 이유는 무엇인지, 왜 쓸모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지, 무엇을 가졌는 지도 모른 채, 쌓고 쌓는다. 그리고 이들의 물건에 대한 집착은 고립과 외로움의 반영이다. 그 물건들이 사랑하는 친구이며 가족이며 의지처이다. 그 외로움에 관한한,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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